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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제로웨이스트 마을의 장기 유지 조건과 실패 사례 분석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마을은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을 순환시키는 지속 가능한 지역 모델로,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주민이 참여하고, 마을 단위로 실천하며, 행정과 민간이 협력하는 구조는 많은 지역에서 ‘새로운 전환의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운동이 장기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시작되지만, 1~2년 안에 흐지부지되거나, 정책이 종료되자 실천도 멈춰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제로웨이스트 마을은 단기 캠페인이나 이벤트 수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분명한 ‘지속 가능성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설계하지 못하면, 마을은 실패하거나 ‘형식만 남은 운동’으로 전락하게 된다.

 

제로웨이스트 마을의 장기 유지 조건

 

이 글에서는 실제 제로웨이스트 마을이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위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국내외 실패 사례를 통해 어떤 실수들이 반복되어 왔는지를 짚어본다. 성공 요인을 논하는 것 못지않게, 실패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지속 가능한 마을 모델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다.

 

제로웨이스트 마을 유지의 핵심 조건 3가지

장기적으로 운영되는 제로웨이스트 마을은 단순히 “주민이 잘 참여했다”거나 “예산이 충분했다”는 이유만으로 성공하지 않았다. 대부분 다음과 같은 3가지 구조적 조건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일상화된 실천 구조’와 ‘생활 밀착형 인프라’

성공적인 마을은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특별한 날’이 아닌, ‘매일의 일상’으로 설계한다. 예를 들어 공동 분리배출소, 리필스테이션, 음식물 퇴비장, 다회용기 세척소 같은 실천 인프라가 생활 반경 안에 존재하고 접근성이 뛰어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제주 조천읍은 리필제품을 사러 버스를 타야 했던 초기 구조를 개선해, 마을 편의점 자체에 리필 존을 설치했고, 주민 참여율은 그 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물리적 인프라는 단순 편의성이 아니라, 실천이 반복되도록 돕는 습관화의 기반이다.

‘주민 주도 운영’과 ‘공동체 리더십’

단기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마을이 실천을 유지하려면, 운영 주체가 외부 조직이 아닌 마을 내부에 존재해야 한다. 주민협의체, 자율운영단, 마을리더 네트워크 등이 지속 운영되고, 각자의 역할이 명확히 분담되어 있어야 한다. 경남 고성의 한 마을은 ‘제로웨이스트 추진위원회’가 주민 스스로 선출되어 분리배출, 행사 기획, 신입 주민 안내까지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주민이 주인이 되는 구조가 정착될 때, 외부 지원 없이도 실천이 이어질 수 있다.

‘성과 가시화’와 ‘지속적 피드백 시스템’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보일 때 지속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따라서 감량량, 재활용률, 참여율 등의 데이터를 주민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공유하거나 축하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전북 완주의 한 마을은 월별 감량 성과를 마을 게시판에 시각화해 공유하고, 감량 우수 가구에는 장터 할인 쿠폰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동기를 부여한다. 성과를 ‘축제처럼 공유하는 구조’가 유지 동력으로 작동한 것이다.

 

실패한 마을 사례와 반복되는 3가지 실수

제로웨이스트 마을 조성 이후 운영이 중단되거나 흐지부지된 사례에서는 몇 가지 공통된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

캠페인 중심, 구조 부재 → 실천 단절

충청도의 한 마을은 ‘제로웨이스트 선포식’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홍보와 교육을 진행했지만, 생활 속 실천 기반(리필존, 다회용기 회수소 등)이 전무했다. 결국 주민들은 “말로는 알겠지만, 실천할 수단이 없다”며 참여를 포기했고, 1년 후 운영은 종료되었다. 이 사례는 물리적·사회적 인프라 없이 메시지만 강조했을 때 실천이 유지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외부 전문가 중심 → 주민 배제

경기도 북부의 한 마을은 환경단체와 협업해 제로웨이스트 모델을 도입했으나, 대부분의 실행 기획과 의사결정을 외부 전문가가 주도했다.
초기에는 체계적인 운영이 이뤄졌지만, 주민이 배제된 상태에서 실천이 피로감으로 변했고, 담당 기관의 예산이 종료되자 곧바로 중단되었다. 이 경우 ‘참여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역할이 제한된 주민은 프로젝트가 끝나자 관심도 함께 사라진다.

단기 성과에 집중 → 지속 시스템 부재

전남의 한 어촌 마을은 제로웨이스트 실천 6개월 만에 쓰레기 발생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성과 발표 후 지속 가능성을 위한 후속 계획이 없었다. 운영 인력은 축소되었고, 리필제품 공급은 중단됐으며, 마을회관에 있던 자원순환 교육장은 폐쇄되었다. 이 사례는 단기적 성과는 화려했지만, 지속을 위한 재정, 인력, 자원 순환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지속 가능성은 ‘마을 내부 구조’가 결정한다

제로웨이스트 마을은 한 번의 캠페인이나 프로젝트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 실천이 반복되고, 공동체가 성장하며,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부 기반 구조’가 설계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마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생활 기반 인프라가 존재하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자율 운영 구조가 있으며 성과와 변화가 눈에 보이고 공유되는 문화가 있다.

 

반대로 실패한 마을은 이 구조 없이 외부 주도, 단기 이벤트, 실행 부재라는 공통된 함정을 반복한다. 앞으로 제로웨이스트 마을을 설계하거나 운영할 때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계속 가는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