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

제로웨이스트 실천과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융합 가능성

editor-2025 2025. 7. 21. 19:35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 만들기’는 핵심적인 정책 어젠다로 자리 잡았다. 기후 위기, 고령화, 지방 소멸, 도심 공동화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개선하는 차원을 넘어, 삶의 방식과 철학까지 재설계하는 흐름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편, 일상 속에서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을 순환시키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운동 역시 도시 속 새로운 문화로 확산되고 있다. 개인의 실천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공동체 기반의 리필 숍, 지역 마켓, 공유 커뮤니티 등으로 형태를 확장하며 도시라는 공간 안에서 재구성되고 있는 중이다.

 

제로웨이스트와 도시 재생 프로젝트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로웨이스트와 도시 재생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둘 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순환’을 기반으로 공간과 삶, 사회적 관계를 다시 설계하려는 철학적 접점을 지닌다. 그리고 이 접점이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연결될 때, 도시 재생은 단순한 공간 정비가 아니라 삶의 재생, 환경의 재생, 공동체의 재생이라는 진정한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와 도시 재생의 철학적 공통점

‘순환’을 중심에 두는 삶의 재설계

제로웨이스트는 폐기물을 줄이는 데서 끝나는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자원의 순환 시스템을 일상 속에 구축하려는 실천이다. 먹고, 쓰고, 버리는 일상의 구조 자체를 되짚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버리지 않아도 되는 방식을 고민한다.

 

도시 재생 역시 본질은 ‘순환’이다. 낡고 버려진 건물을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재활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 기본이다. 버려졌던 공간을 다시 활용하고, 공동체의 기억과 자산을 미래 세대와 연결하며 도시를 되살리는 것. 이 과정은 제로웨이스트가 추구하는 순환의 철학과 같은 맥락에 있다.

 

즉, 제로웨이스트가 ‘개인 단위의 순환’을 지향한다면, 도시 재생은 ‘공간 단위의 순환’을 지향한다. 이 둘이 연결되면 도시 전체의 생태계가 보다 지속 가능한 구조로 진화할 수 있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구조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단지 개인 실천에 머물렀다면 지금처럼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회용기 공유소, 리필 상점, 쓰레기 없는 마켓, 분리배출 커뮤니티 등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실제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의 협력과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도시 재생 역시 마찬가지다. 외부 자본이나 대형 기업이 들어와 건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의 공간을 회복하는 방식이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특히 구도심이나 쇠퇴한 동네를 다시 일으키는 과정에서 기억, 관계, 자원의 순환이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이처럼 두 운동은 공동체 중심의 실천과 참여를 통해 확산된다는 점에서 같은 구조를 지닌다. 따라서 도시 재생 프로젝트 안에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포함될 때, 주민들은 공간뿐 아니라 삶의 태도까지 함께 재설계하는 계기를 얻게 된다.

 

융합 가능한 실천 구조 – 공간, 콘텐츠, 커뮤니티 관점에서

제로웨이스트와 도시 재생은 철학적으로 연결될 뿐 아니라, 실제 공간과 활동 구조에서도 융합 가능한 실천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공간 설계, 콘텐츠 기획, 공동체 운영의 세 가지 측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제로웨이스트 공간’을 도시 재생 거점으로 만들기

도시 재생 프로젝트는 보통 빈 건물이나 폐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커뮤니티 센터, 마을 카페, 공방 등으로 재탄생시키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제로웨이스트 개념을 결합하면 물리적 공간이 곧 실천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시 재생 거점 공간에 리필 스테이션, 다회용기 세척소, 중고물품 공유소, 쓰레기 없는 마켓, 천연 생활재 제조 워크숍 등이 함께 운영된다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자원 순환’을 일상화할 수 있다. 단순히 예쁘게 리모델링한 공간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삶을 학습하고 실천하는 열린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로 이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은평구의 '녹번제로숍'은 도시재생으로 생긴 공간 안에서 리필숍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산의 전포카페거리 일부는 리사이클 기반 공예 공간과 친환경 샵으로 재탄생하며 제로웨이스트-도시재생의 하이브리드 사례가 되고 있다.

 

콘텐츠 중심의 실천 캠페인과 문화기획

공간만으로는 실천을 유도하기 어렵다. 따라서 도시 재생 공간 안에 제로웨이스트 철학을 담은 콘텐츠 기획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형태다:

  • 제로웨이스트 플리마켓: 주민들이 직접 다회용기, 중고 용품, 직접 만든 천연 제품 등을 나누는 장터
  • 제로웨이스트 아카데미: 재활용·재사용 교육, 업사이클링 공예 클래스, 천연 세제 만들기 체험
  • 환경 다큐 상영회와 토크콘서트: 지역 재생과 쓰레기 문제를 주제로 한 주민 참여형 행사
  • 리빙랩(생활 실험실): 1달간 제로웨이스트 삶을 실험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지역 실험 프로그램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지역 주민의 인식 전환과 공동체 참여를 이끄는 기획이 되며, 도시 재생이 자칫 보여주기식 사업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실천적 장치가 된다.

 

커뮤니티 기반 자원 순환 시스템 구축

결국 도시 재생과 제로웨이스트가 가장 효과적으로 융합되는 지점은 커뮤니티 기반 자원 순환 시스템이다. 즉, 주민들이 자원을 ‘어떻게 소비하고, 남은 것을 어디로 돌리고, 어떻게 공유하는지’에 대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는 다회용기 공유 플랫폼이다. 지역 내에서 카페, 음식점, 시장 등이 함께 참여해 다회용 용기를 공통으로 사용하고, 세척-회수-재배포 시스템을 운영하면 자연스럽게 도시 안에서 폐기물이 줄고, 상점 간 협력이 강화된다. 이는 단순한 환경 실천이 아니라 지역 경제와 상생 구조를 만드는 도시 재생의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퇴비화 공동텃밭, 낡은 가구를 수리해서 나누는 가구 업사이클 워크숍, 지역 청년들이 운영하는 제로웨이스트 콘텐츠 미디어 등도 도시 재생의 방향성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

 

도시 재생은 쓰레기 없는 삶의 방식과 만날 때 완성된다

제로웨이스트와 도시 재생은 각각의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이제는 두 철학이 하나로 연결되어야 할 때다. 도시가 재생된다는 것은 단지 건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와 습관, 관계와 순환 구조까지 함께 바뀌어야 완성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도시 재생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주민은 공간만 얻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과 공동체적 실천 경험을 얻게 되고, 도시 재생은 단순한 인프라 개선이 아닌 생태적 전환의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앞으로의 도시 재생은 필연적으로 기후 위기, 환경 정책, 윤리적 소비, 공동체 회복 등 복합적 사회 이슈를 포괄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그 중심에서 제로웨이스트는 실천 가능한 가장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이제 도시를 되살리는 일은 쓰레기를 줄이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연결하고, 다시 사용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도시를 상상하는 것, 그것이 진짜 재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