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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지방정부의 제로웨이스트 조례 제정 사례와 내용 비교

제로웨이스트 운동은 더 이상 시민사회만의 과제가 아니다. 폐기물 감축과 자원 순환을 통한 지속가능한 사회 실현은 지방정부 단위에서 정책적으로 제도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다수의 지자체들이 ‘제로웨이스트’를 핵심 키워드로 한 조례를 제정하면서 법적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

 

조례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법적 효력을 갖는 행정 장치로서, 지자체의 예산 편성, 행정 행위, 민관 협력, 주민 참여 구조의 틀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조례가 없다면 제로웨이스트 정책은 단기 사업이나 캠페인에 그칠 가능성이 높지만, 조례가 있으면 행정 일정을 넘는 중장기 계획과 안정적인 정책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지방정부의 제로웨이스트 사례

 

하지만 조례는 지자체마다 내용과 구조에 차이가 크다. 어떤 지자체는 선언적 문구에 머무르고 있고, 어떤 곳은 실행 체계와 재정지원까지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실제로 제정된 국내 제로웨이스트 관련 조례들을 비교 분석하고, 각 조례의 특징과 향후 확산을 위한 시사점을 도출한다.

 

주요 지자체의 제로웨이스트 조례 제정 사례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제로웨이스트’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는 많지 않다. 그러나 자원순환, 쓰레기 없는 마을, 탄소중립형 생활실천 등 유사 개념을 포함한 조례들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서울특별시, 충청북도 제천시, 전라남도 순천시, 경기도 부천시 등이다.

 

서울시는 2022년 「서울특별시 1회용품 줄이기 및 재사용 활성화 조례」를 제정하며, ‘제로웨이스트 도시’로의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이 조례는 제로웨이스트라는 용어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구체적으로 재사용 촉진과 다회용기 인프라 구축, 리필매장 활성화 등을 통해 폐기물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 조례는 민간 부문과의 협력을 제도화하고, 인센티브 제공과 성과 평가 체계를 포함한 점이 주목된다.

 

제천시는 2023년 「쓰레기 없는 도시 만들기 조례」를 통해 지역 단위 제로웨이스트 모델을 도입했다. 이 조례는 행정주도의 정책 집행뿐 아니라, 주민참여형 실천체계를 중점에 두고 설계되었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제로웨이스트 실천단’을 운영하고, 상시 의견 수렴과 교육 활동을 조례에 포함시킨 것이 특징이다. 또한 ‘제로웨이스트 인증제’를 명시하며 지역 내 상점·기관·학교 등에 대한 인증을 제도화했다.

 

순천시는 2024년 「순천시 순환도시 조성 및 자원순환 촉진 조례」를 통해 보다 넓은 개념에서 제로웨이스트를 다루었다. 이 조례는 ‘순환경제’를 핵심 키워드로 채택하면서,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단순히 개인의 노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경제구조와 소비 패턴까지 바꾸는 구조적 개입을 목표로 설정했다. 특히 이 조례는 리퍼브 센터 운영, 공유창고 설치, 중고품 교환 장터 지원 등 순환경제 인프라를 조례에 명시해 주목을 받았다.

 

부천시는 「생활 속 자원순환 촉진에 관한 조례」를 통해 다회용기 회수·세척 시스템을 행정 의무로 명시하고, 재사용 촉진을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이 조례는 음식배달, 카페, 편의점 등 민간 생활소비 영역에서의 일회용 감축을 구체적인 행정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조례 내용의 비교와 정책적 시사점

각 조례는 제정된 시기, 지역 특성, 행정철학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다르지만, 몇 가지 비교 포인트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드러난다.

 

우선 ‘정의 조항’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어떤 조례는 ‘제로웨이스트’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실천 범위를 명시하고 있는 반면, 어떤 조례는 유사 개념(순환도시, 자원순환, 쓰레기 없는 마을 등)만 언급하고 제로웨이스트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향후 정책 정합성 확보를 위해 제로웨이스트 개념 정의의 통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둘째, 실천 주체의 구조화 수준이 다르다. 서울과 순천은 행정 중심의 거버넌스를 강조하면서 공공 기반 인프라 확충에 초점을 맞췄고, 제천은 주민 자율조직과 교육 기반 참여 구조를 조례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같은 제로웨이스트 정책이라도, 실행 현장에서의 동력 확보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셋째, 재정적 지원 항목과 예산 구조의 명시 여부가 조례별로 차이가 크다. 일부 조례는 ‘예산 지원 가능’이라는 문구로 제한적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순천시 조례처럼 ‘연간 시행계획과 예산편성의 의무’를 명시한 조례는 제도 집행력 면에서 유리하다. 이는 향후 조례 개정 시 예산 연계 조항의 구체화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또한 ‘성과 평가 및 공표’ 항목이 포함된 조례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실행 주체와 목표는 설정되어 있지만, 실행 이후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피드백할 것인지에 대한 항목이 빠져 있다. 향후 성과지표 설정과 주민 피드백 구조를 조례에 포함하는 개정 방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민간과의 협력 구조 명문화 여부다. 부천과 서울은 민간 영역과의 협약, 상생 구조를 제도화하고 있지만, 일부 지자체 조례는 행정의 ‘지시-실천’ 구조에 머물고 있다. 제로웨이스트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실천이기 때문에, 민간 참여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조항의 비중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

 

제로웨이스트 조례는 실천의 제도적 기초다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더 이상 일시적인 시민 운동이 아니다. 지방정부가 정책과 제도, 예산, 참여 구조를 통해 이 운동을 공공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는 지금, 조례는 실천의 구조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조례는 그 지역이 어떤 방식으로 제로웨이스트를 바라보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선언적 수준에서 머무는 조례는 캠페인 반복으로 끝나지만, 실천 구조와 평가 체계까지 포함한 조례는 실제 지역 변화를 일으키는 도구가 된다.

 

앞으로 제로웨이스트 조례가 확산되고 개정되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용어와 개념의 통일, 실천 주체의 구조화, 예산 연계, 성과 평가 체계 도입, 민간 협력 명문화 등이다. 이 다섯 가지 요소가 균형 있게 포함되어야, 조례는 단지 문서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정책 플랫폼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각지의 마을과 시·군·구에서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이어지고 있다. 이 실천이 일시적인 흐름이 아닌, 제도 속에 뿌리내리려면 ‘조례’라는 기반이 더욱 강력하고 세밀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정책은 구조 없이는 지속될 수 없고, 구조는 조례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