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Zero Waste)는 본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순환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지역 브랜드와 관광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는 실천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은 마을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제로웨이스트 마을’을 관광지로 찾는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으며, 마을들은 이를 지역경제 활성화의 기회로 삼고 있다.
하지만 관광객의 증가가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이 몰리면 인프라에 부담이 가해지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일회용품과 포장재 등 비제로웨이스트 요소들이 지역의 자원순환 구조를 흔드는 문제도 발생한다. 특히 정주민과 관광객 간의 인식 차이, 실천 수준의 격차는 마을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제로웨이스트 마을에서 관광산업이 어떤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동시에 어떤 지속가능성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전략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나아가, 관광과 제로웨이스트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
관광은 제로웨이스트 마을에 무엇을 가져오는가: 기회 요인 분석
제로웨이스트 마을은 그 자체로 강력한 관광 자산이 된다. ‘쓰레기 없는 마을’이라는 콘셉트는 도시인들에게 신선하고 교육적인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며, 에코투어리즘, 체험 관광, 환경 교육 여행 등 다양한 테마로 확장될 수 있다. 일본 가미카쓰의 ‘호텔 WHY’처럼, 숙박 자체가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되는 관광 콘텐츠는 지속가능한 여행 트렌드와도 잘 맞물린다.
관광객 유입은 마을의 경제적 자립 기반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현지 농산물, 수공예품, 리필 상품, 제로웨이스트 카페와 상점 등은 외부 손님을 대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으며, 일부 마을은 관광 수익을 제로웨이스트 인프라 확충에 재투자하는 구조를 마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카푸나는 관광객 대상 재활용 공방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수익으로 청소년 환경교육에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또한 관광은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 주민들은 마을의 철학을 외부인에게 설명하고 소개하면서 자기 실천에 대한 자긍심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문화적 효과는 장기적으로 주민들의 실천 동기를 유지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일부 마을에서는 관광을 계기로 청년들이 귀촌하거나, 외지인이 이주해 지역에 정착하는 선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관광이 남기는 문제: 제로웨이스트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들
그러나 관광산업은 동시에 제로웨이스트 마을의 구조적 취약성을 자극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관광객이 배출하는 쓰레기다. 외부 방문객은 내부 시스템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회용품을 가지고 들어오고, 분리배출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단체 관광객의 경우, 간편성과 시간 절약을 이유로 포장식 도시락, 플라스틱 생수, 일회용 위생용품을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로 인해 마을의 자원순환 인프라에는 예상 이상의 부담이 가해진다. 예산은 주민 수 기준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관광객 쓰레기까지 감당하려면 운영 비용과 행정력이 이중으로 소모된다. 베네치아 외곽의 제로웨이스트 마을들은 이런 문제로 인해 관광객 대상 쓰레기 차단 정책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관광세 또는 환경부담금 제도를 도입해 대응하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제로웨이스트 체험의 상품화’다. 일부 마을에서는 관광객을 위한 편의성과 시각적 홍보에 집중한 나머지, 실제 주민 참여나 실천의 진정성이 약화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쓰레기 없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마을 일부 공간만 제로웨이스트 콘셉트로 꾸미고, 실제 생활구역은 배제되는 ‘쇼룸 마을’ 현상도 있다. 이로 인해 관광객은 감동받지만, 주민은 피로감과 괴리감을 느끼는 이중 구조가 형성된다.
또한 관광이 중심이 되면 ‘누구를 위한 제로웨이스트인가’라는 질문이 발생할 수 있다. 정주민의 생활 불편은 커지는데, 혜택은 관광업 종사자에게만 돌아간다면 정책에 대한 내부 지지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마을 내 갈등 요인이 되고, 지속적인 실천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와 관광,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제로웨이스트 마을에서 관광산업은 양날의 검이다. 제대로 설계되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주민 실천을 강화하는 좋은 촉진제가 되지만, 관리되지 않으면 자원순환 구조를 흔들고 주민 피로도를 높이는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제로웨이스트 + 관광’은 철저히 전략적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기획 초기 단계부터 주민과 함께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
관광객 쓰레기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제로웨이스트 여행 안내 가이드’, 개인용 다회용기 세트 제공, 관광객 대상 리필존 설치, 방문 전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교육 프로그램 등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광객에게 마을의 철학과 원칙을 알리고,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잠시 머무는 실천자’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만드는 설계다.
또한 관광 수익이 마을 전체에 분배되도록 제로웨이스트 기금 설립, 수익 일부의 주민 환원, 지역 사업 우선 연계 같은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외부인이 참여하되, 그 이익이 내부로 순환되는 구조가 형성되어야 지속 가능성이 확보된다.
결국 제로웨이스트와 관광은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설계와 운영 방식에 따라 공존할 수 있는 파트너다. 관광객도 쓰레기 없는 삶을 경험할 수 있고, 마을도 이를 통해 경제적 자립을 확대할 수 있다. 핵심은 진정성과 참여, 그리고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한 촘촘한 전략이다. 마을이 보여주는 ‘제로웨이스트 삶’이 단지 보여주기용이 아니라, 방문객에게도 진짜 실천의 경험이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지속 가능한 관광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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