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Zero Waste)는 단순한 환경 캠페인이 아니라, 지역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 운동이다. 플라스틱, 음식물, 포장재, 의류 등 생활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인식 변화와 지속적인 실천이 필요하고, 동시에 이를 가능하게 할 제도와 인프라, 공동체 구조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제로웨이스트 마을의 성공 여부는 ‘누가 주도하는가’라는 리더십 구조의 문제로 연결된다.
일부 마을은 시민 주도형으로, 즉 지역 주민이 직접 문제를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실천하며 구조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을 채택한다. 반면 또 다른 마을은 행정 주도형으로, 지방정부나 지자체가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지원하며 실행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두 모델 모두 장단점이 뚜렷하며, 현실에서는 이 두 구조가 혼합된 형태로 작동하는 경우도 많다.
이 글에서는 제로웨이스트 마을에서 시민 주도형과 행정 주도형 리더십이 각각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어떤 성과와 한계를 보였는지를 비교 분석한다. 나아가 두 방식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지속 가능한 마을 실천 구조로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합적 전략을 제안한다.
제로웨이스트 시민 주도형 리더십: 자율성과 공동체 기반의 강점
시민 주도형 제로웨이스트 마을은 대부분 주민들의 자각에서 출발한다. 마을 내 쓰레기 문제에 대한 불만이나 위기감이 계기가 되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방안을 논의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리더십은 ‘공식 직책을 가진 리더’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솔선수범하며 신뢰를 얻은 인물들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가미카쓰다. 이 마을은 소각장 건립 비용 문제를 계기로 주민들이 쓰레기 분리배출과 감량을 직접 실천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마을 전체가 자율적인 쓰레기 분류 시스템과 재활용 구조를 만들었다. 행정은 나중에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을 뿐, 초기에는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핵심 동력이었다.
시민 주도형 리더십의 강점은 높은 실천 지속성과 공동체 정체성 강화다. 주민 스스로 만든 규칙은 행정 지시보다 수용도가 높고, 실천 과정에서 형성된 연대감은 지속적인 참여를 가능케 한다. 또한 이 방식은 외부 지원이 부족해도 자율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계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확장성과 제도화의 어려움이다. 시민 주도형 모델은 특정 인물의 열정이나 공동체 문화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인력 교체나 갈등 발생 시 유지가 어렵다. 또한 행정과의 연계가 약하면 예산 확보나 정책 반영에도 한계가 생긴다. 결국 시민 주도형 모델은 공동체 내부의 동력은 강하지만, 외부 자원과의 연결성에서는 취약할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 행정 주도형 리더십: 자원 동원과 제도화의 장점
행정 주도형 제로웨이스트 마을은 지방정부나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며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리더십은 단체장, 환경 담당 공무원, 또는 전문 행정 조직에 의해 수행된다. 초기에는 상향식 방식보다는 하향식으로 추진되지만, 주민 참여 유도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인센티브를 병행한다.
대표 사례로는 서울 성동구의 ‘제로웨이스트 생활권 시범구역 사업’을 들 수 있다. 구청이 리필 스테이션, 다회용기 순환, 분리수거 거점 등을 설계하고, 사회적 기업과 협업해 시스템을 구축한 뒤, 주민 대상 설명회와 체험 교육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 모델은 정책 추진력이 강하고, 물리적 인프라와 제도화 기반을 신속하게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다른 예는 경기도 파주시의 ‘제로웨이스트 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이 지역은 행정이 쓰레기 감량 목표를 설정하고, 마을별로 실천단을 조직해 감량률에 따라 포인트를 지급하며, 매년 성과평가를 통해 우수 마을을 선정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러한 방식은 측정 가능성, 평가 체계, 장기 예산 확보 등 행정의 특장점을 활용한 사례다.
하지만 행정 주도형의 문제점은 주민 실천의 자발성이 낮다는 데 있다. ‘행정이 시키는 일’로 인식되면 형식적 참여나 반감이 생기기 쉽고, 정책 지속성도 단체장의 임기나 담당자의 관심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하향식 정책은 현장 실정과 괴리가 생길 수 있으며, 실패 사례를 인정하지 않는 경직성도 단점으로 꼽힌다.
즉, 행정 주도형은 시스템화와 확장에는 유리하지만, 참여 주체의 동기와 공동체성 형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단독으로는 한계가 있는 구조다.
이분법을 넘어, ‘공동 리더십 구조’가 해답이다
제로웨이스트 마을의 성공은 단지 시민이 주도하느냐, 행정이 주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두 리더십 구조가 어떻게 만나고, 상호 보완하며, 하나의 지속 가능한 실행 시스템을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실제로 많은 성공 사례들은 시민과 행정이 ‘각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도 공동의 목표를 향해 유연하게 협업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민은 생활 현장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주민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발적 실천을 촉진할 수 있다. 반면 행정은 예산과 인프라, 제도를 설계하고 지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려면 ‘행정은 지원자이자 촉진자’, ‘시민은 실천자이자 제안자’라는 수평적 협업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 운영 거버넌스, 정례적 의견 수렴 체계, 시민 리더 양성 프로그램, 주민-행정 공동 평가 시스템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즉, 제로웨이스트 마을은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마을이 아니라, 공동의 리더십을 실험하고 실현하는 민주적 생활 공동체의 장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한국의 제로웨이스트 마을이 지속 가능해지려면, 시민 주도의 에너지와 행정 주도의 구조화 역량이 만나야 한다. 누가 앞장서느냐보다, 누가 함께 책임지고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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