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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제로웨이스트와 장애인·노년층 등 취약계층 접근성 문제 분석

제로웨이스트와 취약계층,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성은 가능한가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실천이자 철학입니다.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자원을 재활용하며,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이 운동은 지구를 위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져본 적 있으신가요?

 

“과연 제로웨이스트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실천 가능한 방식일까?”

 

현실은 다릅니다. 장애인, 노년층, 저소득층과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때때로 ‘선택’이 아닌 ‘배제’로 작용합니다. 환경을 위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부담, 또는 불가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간과합니다.

 

제로웨이스트와 취약계층 접근성 문제

 

이 글에서는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어떤 지점에서 취약계층의 삶과 충돌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를 하나씩 짚어보며, 진정한 의미의 포용적 지속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제로웨이스트 실천,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제로웨이스트는 이론적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실천 단계로 내려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특히 몸이 불편한 사람, 노화로 인해 신체 기능이 저하된 고령자,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좋은 실천’이 오히려 일상의 벽이자 제한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회용기와 리필 시스템, ‘사용할 수 없는’ 구조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많은 공간에서는 ‘다회용기’를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는 텀블러를 가져오라고 하고, 리필 스테이션에서는 자신의 용기를 가져와 제품을 채워야 하죠. 그러나 중증 지체장애인에게는 이런 ‘행동’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에게 유리병을 들고 이동하는 일, 용기를 직접 씻고 옮기는 일은 고된 노동이자 때로는 위험한 행동입니다.

 

고령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절 통증이나 기억력 저하로 인해 다회용기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리필 스테이션의 구조 자체가 너무 복잡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친환경 제품의 ‘가격 장벽’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흔히 추천되는 제품들은 대부분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진 고가의 제품입니다. 스테인리스 빨대, 대나무 칫솔, 천연 수세미, 무포장 샴푸바 등은 그 자체로는 훌륭한 대안이지만, 저소득층에게는 생활필수품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 마트에서 500원에 살 수 있는 플라스틱 칫솔 대신 3~4배 이상 비싼 대나무 칫솔을 권장하는 것은 소득 계층에 따른 선택권의 차별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결국 환경을 위한 실천이 ‘돈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여겨지게 되면서, 제로웨이스트는 배타적인 라이프스타일처럼 보일 위험도 안고 있습니다.

 

정보 격차와 접근성 문제

환경 운동은 디지털 매체를 기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통해 실천법을 공유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함께 행동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죠.

 

하지만 장애인과 고령자 가운데는 디지털 소외 계층이 많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거나 아예 접속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제로웨이스트 실천법에 대한 기본 정보조차 습득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으며, 이는 실천의 출발선조차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공 인프라의 미비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공공시설의 문제입니다. 다회용기를 세척할 수 있는 공간, 리필이 가능한 장소, 친환경 제품을 접할 수 있는 매장 등은 대부분 대도시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장애인을 위한 편의 설비도 부족합니다.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리필 스테이션은 거의 없으며, 안내 표지나 사용법도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을 고려한 설계가 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제로웨이스트가 도시 중산층 중심의 운동으로 고착화될 수 있는 위험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 가능한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제로웨이스트는 단순한 ‘환경 보호 실천’으로만 보기엔 그 안에 놓인 사회적 격차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제로웨이스트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단순히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실천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주는 일’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는 환경 운동도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포용적 구조로 나아가야 할 시점입니다.

 

제품·공간 디자인에 ‘배려’와 ‘공감’ 넣기

우선 제로웨이스트 실천의 핵심 요소인 ‘용기’, ‘리필’, ‘다회용’ 중심 시스템은 지금보다 더 배리어프리(barrier-free)*하게 설계될 필요가 있습니다.

  • 리필 스테이션의 높낮이 조절, 휠체어 진입 가능 공간 확보
  • 라벨에 점자 안내 추가
  • 청각장애인을 위한 시각적 안내 이미지 설치
  • 노년층을 위한 간단한 리필 사용 가이드 제공

이러한 접근성은 단순한 친절을 넘어, 제로웨이스트 시스템을 ‘사회적 인프라’로 확장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가격 장벽을 낮추는 구조 만들기

취약계층을 위한 실천 기회를 넓히기 위해선 친환경 제품에 대한 공공 지원이나 공동체 기반 나눔 구조가 필요합니다.

  • 지역 주민센터나 복지관에서 다회용기 무료 배포
  • 저소득층 대상 친환경 용품 할인 정책
  • 기업과 연계한 제로웨이스트 제품 기부 캠페인 운영

이처럼 실천을 ‘누구나 접근 가능한 영역’으로 바꿔야만, 제로웨이스트는 중산층만의 유행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생활양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 기반 콘텐츠로 정보격차 해소하기

디지털 기반이 아닌 오프라인 중심의 콘텐츠 확산도 중요합니다. 특히 노년층이나 장애인을 위한 ‘쉬운 언어’로 설명된 환경 교육 콘텐츠는 효과적인 접근 수단이 됩니다.

  • 마을방송, 동네신문 등 아날로그 매체 활용
  • 복지관, 경로당 중심의 소그룹 실천 교육
  • 수어로 진행되는 환경 캠페인 영상, 점자 안내서 제작

이런 방식으로 정보의 문턱을 낮추면, 실천의 첫걸음은 누구에게나 열릴 수 있습니다.

 

실천 주체로서의 ‘취약계층’ 이야기 만들기

가장 중요한 건, 장애인과 노년층, 저소득층이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라 제로웨이스트 실천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 휠체어를 타고 장을 보며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활동가
  • 남는 천으로 다회용 포장지를 만드는 시니어 공방
  • 발달장애 청년들이 운영하는 리필 마켓

이러한 사례는 단순한 배려를 넘어,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사회적 포용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 자체로도 강력한 스토리이며, 콘텐츠로 재가공되었을 때 공감력 높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성은, 모두가 실천할 수 있을 때 완성된다

제로웨이스트는 분명히 옳은 방향입니다. 하지만 모든 옳은 실천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가능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장애인과 노년층, 저소득층이 제로웨이스트 실천에서 배제되는 것은, 그들이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그들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위한 별도의 ‘배려’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두를 위한 제로웨이스트 구조를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지속 가능성이고, 진짜 환경 운동입니다. 환경은 특정 계층의 권리가 아니라, 모두의 것이니까요. 그리고 모두가 실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변화를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