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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한국 지자체 제로웨이스트 추진 조례 및 제도 정리

기후 위기와 자원 고갈 문제에 대한 대응이 전 세계적인 과제로 부상하면서, 쓰레기를 줄이려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정책이 국가 단위를 넘어 지역 단위의 실천 전략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의 일괄적 규제만으로는 지역 특성에 맞는 환경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만큼, 지방자치단체의 독립적인 환경정책 마련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다수의 지자체가 제로웨이스트 개념을 바탕으로 한 조례를 제정하고, 자체 제도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이는 단순한 홍보나 캠페인을 넘어서, 법적 근거를 가진 지속 가능한 행정 체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제로웨이스트 조례는 주민 참여, 자원 순환, 포장재 감축, 공공기관 모범 운영 등의 세부 항목을 담아내며 실질적인 정책 실행의 틀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제로웨이스트 추진 조례 및 제도

 

이 글에서는 대한민국 지자체가 추진 중인 제로웨이스트 관련 조례와 제도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장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앞으로 제로웨이스트 정책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구조화된 지방행정으로 자리 잡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조명하고자 한다.

 

제로웨이스트 조례의 핵심 내용과 전국 현황

현재 한국에서는 일부 선도 지자체를 중심으로 제로웨이스트 관련 조례가 본격적으로 제정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강원도 평창군, 전라북도 전주시, 충청남도 천안시 등이 있다. 이들 지자체는 제로웨이스트를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닌 법적 근거를 갖춘 행정 목표로 선언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책을 추진 중이다.

 

조례의 공통적인 핵심 요소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정의 및 목적 규정이다. 대부분의 조례는 ‘제로웨이스트’를 “폐기물 발생 최소화를 목표로 한 자원순환 중심의 생활·행정 시스템”으로 정의하고, 그 목적을 주민의 건강 보호, 기후 대응, 자원 절약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둘째, 주민 참여 기반 제도화다. 조례에는 ‘제로웨이스트 실천 주민단체 지원’, ‘거버넌스 협의체 구성’, ‘주민 제안제도’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천안시는 주민 제안으로 시작된 ‘다회용 컵 공유 프로젝트’를 조례에 반영해 공식화했고, 이로 인해 행정의 실행력이 강화되었다.

 

셋째, 공공기관 의무 조항이다. 조례에는 ‘공공기관의 일회용품 사용 억제’, ‘청사 내 쓰레기 감량 계획 수립’, ‘행정 행사 제로웨이스트 원칙 적용’ 등 공공 부문이 선도해야 할 항목들이 명시되어 있다. 전주시의 경우, 시청과 구청 내부 행사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포장 사용이 완전히 금지되었고, 이를 위반할 경우 내부 규정에 따라 불이익이 주어지도록 되어 있다.

 

넷째, 인프라 구축과 예산 확보다. 일부 조례는 리필스테이션 설치 지원, 다회용기 회수함 운영, 퇴비화 시스템 도입 등에 필요한 예산을 매년 정례화하여 안정적으로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평창군은 군 예산의 일정 비율을 ‘지역 자원순환사업 기금’으로 별도 편성해 제로웨이스트 기반 시설 확충에 사용하고 있다.

 

다섯째, 교육·홍보 체계 구축이다. 조례는 행정의 단기 사업이 아닌 장기 시민문화로 정착하기 위해, 학교·마을·기업 대상 교육 프로그램, 실천 사례 홍보, SNS 활용 등을 조항에 포함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 조례 기반 실행 제도의 유형과 실제 사례

지자체 조례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단지 법 문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와 실무 체계가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조례에 근거한 다양한 제도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그 구조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주민 참여 중심 프로그램 제도화다. 서울 성동구는 ‘제로웨이스트 실천단’을 모집해 지역 상점, 카페, 마트와 협약을 맺고, 일회용품 줄이기 캠페인을 주민 주도로 전개하고 있다. 이 활동은 조례에 의해 제도화되어, 실천단은 매달 활동비를 지원받고, 실적을 보고하면 구청이 평가 및 홍보를 지원한다. 단순 자원봉사가 아닌 ‘정식 제도’로 주민 활동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두 번째는 행정-민간 연계 플랫폼 구축이다. 전주시는 제로웨이스트 사업을 위해 ‘자원순환 도시 전주 추진협의회’를 발족했고, 이 협의체에는 행정, 시민단체, 상인연합회, 학교, 언론 등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매월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집행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은 조례의 ‘거버넌스 구성’ 조항에 근거하여 정기적으로 운영되며, 정책 결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세 번째는 평가 및 인센티브 제도 운영이다. 천안시에서는 조례에 따라 제로웨이스트 실천 우수 단체, 상점, 개인을 선정해 연 1회 시상하고, 친환경 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이 인증은 실제 소비자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 되며, 참여자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일부 지역은 쓰레기 감량량에 따라 가구당 포인트를 지급하고, 이를 지역 화폐나 공공시설 할인에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러한 제도적 정착은 조례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정책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로웨이스트 선언을 넘은 실행 조례, 지역 지속가능성의 핵심

제로웨이스트 정책이 단기 캠페인이나 이벤트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적 근거와 제도화된 체계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지자체가 제정하는 제로웨이스트 조례는 지역 환경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수단이다.


주민 참여부터 공공기관 실천, 예산과 인프라, 교육과 평가까지 조례에 근거한 제도적 구성은 단순한 행정 효율을 넘어서 생활환경의 근본적 전환을 이끄는 토대가 된다.

 

앞으로 더 많은 지자체가 제로웨이스트 조례를 제정하고, 실제 행정 시스템 안에서 이를 실행 가능한 체계로 연결해 나가야 한다. 특히 단순히 선언적 문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 조항, 예산 연계, 주민 참여 구조, 민관 협력 기반 등을 포함한 조례가 필요하다.
또한 조례가 형식적 문서로 전락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평가와 개정 시스템, 주민의 감시와 제안 통로도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결국 제로웨이스트 정책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를 설계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바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제도화 노력이다. 선언만 반복되는 환경 정책이 아닌, 일상 속에서 실현 가능한 지역 기반 환경 시스템으로 진화하기 위해, 이제는 더 많은 지자체가 ‘실행하는 조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