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제도화하는 지역이다. 특히 쓰레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식으로 ‘제로웨이스트 마을(Zero Waste Town)’이 확산되고 있으며, 여러 도시와 농촌 지역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자원순환 경제와 탄소중립 목표를 연계한 정책을 추진하며, 지자체 단위에서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실험을 장려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지역은 독일의 캄펜하우젠, 스페인의 카푸나, 그리고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외곽 지역이다. 이 세 곳은 모두 ‘제로웨이스트 마을’을 지향하지만, 지리적 환경, 행정 시스템, 주민 구성 등이 다르기 때문에 전략의 구조와 실행 방식이 뚜렷하게 차별화되어 있다.
캄펜하우젠은 환경 NGO와의 협업을 통해 정책을 주도했고, 카푸나는 마을 단위 협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경제 기반까지 바꾸어낸 사례이며, 베네치아 외곽은 관광지 특성상 외부인의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전략이 중심이었다. 이 글에서는 이 세 지역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각각의 전략적 특징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제로웨이스트 정책이 지역 특성에 따라 어떻게 설계되어야 효과적인지를 살펴본다.
제로웨이스트 내부 주도형 전략 vs 협력 거버넌스 전략 비교
독일 북서부의 작은 마을 캄펜하우젠(Kampenhout)은 제로웨이스트 정책의 대표적인 NGO-행정 협력 모델이다. 이 마을은 2015년, 지역 환경단체가 제안한 '제로웨이스트 로드맵'을 지자체가 채택하면서 본격적인 전환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쓰레기 감량을 목표로 리필 매장, 재활용품 순환창고, 대여소 등 물리적 인프라를 조성했고, 이후에는 주민의 참여와 피드백을 기반으로 정책을 보완하는 구조로 전환되었다.
캄펜하우젠의 특징은 정책 결정 과정에 주민이 실질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예산 편성에 있어 주민 위원회의 권한이 크고, 분기마다 실천 성과를 공유하는 공개회의를 열어 정책 수정 제안을 받는다. 이 구조는 행정의 일방적 추진이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정책’이라는 인식을 주민에게 심어주며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 마을은 쓰레기 감축률을 실시간 공개하며 투명성을 확보하고, 다른 지자체의 벤치마킹 요청이 이어질 정도로 우수 사례로 평가받는다.
반면 스페인의 카푸나(Capannori) 마을은 유럽에서 최초로 ‘제로웨이스트’를 공식 선언한 지자체 중 하나이며, 마을 단위 경제구조까지 개편한 전략이 특징적이다. 이 마을은 마을 협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쓰레기 줄이기 운동을 주도했으며, 수거, 분류, 재활용, 퇴비화 과정 모두를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방식으로 체계를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환경 실천을 넘어, 지역 내 일자리 창출과 수익 재분배가 가능한 순환경제 모델로 진화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카푸나는 재활용품 수거·판매로 얻은 수익을 마을 기반시설 확충과 청소년 환경 교육 예산에 재투자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주민의 실천 동기와 자부심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또한, 분리배출률이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고, 음식물 쓰레기 자급 시스템, 다회용기 대여 플랫폼 등도 자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내부 자원으로 모든 과정을 통합하는 구조는 자율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로웨이스트 외부요인 대응형 전략: 관광지형 모델의 도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외곽 지역, 특히 무라노섬(Murano)과 부라노섬(Burano)을 중심으로 한 마을들은 관광객 유입이 많은 지역 특성상 ‘외부 요인 대응형 제로웨이스트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곳의 가장 큰 문제는 마을 주민보다 관광객이 버리는 쓰레기의 양이 훨씬 많다는 점이며, 쓰레기 수거가 배편으로 이루어져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제약도 크다.
이에 따라 베네치아 시는 2020년부터 외곽섬 일부 지역을 제로웨이스트 시범구역으로 지정하고, 관광객 대상 쓰레기 사전 차단 전략을 집중적으로 시행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정책은 ‘관광객 리필 인증 시스템’이다. 이는 관광객이 개인 용기나 텀블러를 사용하면 지역 상점에서 할인 또는 기념품을 제공하는 방식이며, 인증 마크가 있는 업소에는 시의 친환경 인증이 부여된다. 또한 여행사와 협력해 제로웨이스트 투어 상품을 개발하고, 관광 안내소에서 ‘제로웨이스트 안내 지도’를 제공하면서 캠페인 참여율을 높였다.
한편, 베네치아 외곽 마을들은 주민과 관광객을 명확히 구분해 쓰레기 정책을 설계하고 있으며, 주민 대상 정책은 인센티브 기반의 감량제, 공동 퇴비화 프로그램, 친환경 자전거 택배 시스템 등 일상 기반의 실천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중 전략 구조는 쓰레기 감량 효과와 더불어 관광지로서의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제로웨이스트 기반의 숙박업소 인증 제도도 시범 운영 중이다.
지역 특성과 참여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제로웨이스트 전략
캄펜하우젠, 카푸나, 베네치아 외곽 마을은 모두 제로웨이스트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그 실행 전략은 지역의 조건과 참여 구조에 따라 명확히 다르다. 독일 캄펜하우젠은 NGO와 주민이 함께 만드는 협력 거버넌스형 모델이며, 스페인 카푸나는 주민 주도의 지역 자립형 순환경제 모델, 이탈리아 베네치아 외곽은 외부 요인을 고려한 관광지 대응형 이중 전략이 특징적이다.
이들 마을의 공통점은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자는 의지에서 출발했지만, 정책의 설계, 실행, 유지의 주체가 주민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참여가 자율적이고, 실천이 곧 경제와 연결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기에 지속 가능성이 높다. 특히 유럽의 제로웨이스트 정책은 단지 행정 차원의 규제가 아니라, 생활문화와 경제 구조의 변화까지 통합한 지역혁신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분리수거 교육이나 인센티브 지급에 머물지 않고, 주민 참여형 거버넌스 구축, 지역 경제 연계, 관광·문화 요소와의 결합 등 지역 특성에 맞춘 제로웨이스트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쓰레기를 줄이는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구조와 가치의 문제이며, 그것을 어떻게 정책으로 엮어내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유럽의 사례는 그 점에서 지속 가능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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