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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제로웨이스트 마을에서의 퇴비화 시스템 도입 사례

제로웨이스트 운동에서 가장 해결이 어려운 쓰레기 유형 중 하나는 바로 음식물 쓰레기다. 전 세계적으로 음식물 쓰레기는 전체 폐기물의 약 30%를 차지하며, 분해 과정에서 메탄가스 같은 강력한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원인이 된다. 한국의 경우 가정과 식당에서 매년 약 500만 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며, 그중 일부는 동물 사료나 퇴비로 전환되지만, 대부분은 소각되거나 탈수 처리에 머무른다.

 

이러한 현실에서 주목받는 해법이 바로 ‘마을 단위 퇴비화 시스템’이다. 제로웨이스트 마을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자원으로 되돌리는 순환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특히 퇴비화는 단순한 감량을 넘어서 농업, 텃밭, 교육, 자급 구조와 연결되는 핵심 순환 고리가 되고 있다. 더불어 퇴비화는 주민 참여를 촉진하고 공동체 운영 역량을 강화하는 기제로도 작용한다.

 

제로웨이스트 마을의 퇴비화 시스템

 

이 글에서는 국내외 제로웨이스트 마을에서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퇴비화 시스템의 구조와 적용 방식, 성과를 살펴본다. 단순히 기술이나 장비 중심이 아니라, 주민의 실천과 교육, 순환 구조까지 함께 구축된 사례를 통해 퇴비화가 어떻게 마을을 지속 가능한 구조로 전환시키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퇴비화 시스템의 구성과 운영 방식

마을 단위 퇴비화 시스템은 ‘음식물 쓰레기 → 퇴비 → 활용’이라는 자원순환의 핵심 흐름을 현실화하는 장치다. 이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구조로 운영된다:

수거 구조 설계

퇴비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음식물 쓰레기 수거 시스템이다. 다수의 마을은 ‘10가구 단위의 소규모 수거 협의체’를 운영하거나, 공동 배출함을 설치해 특정 요일에만 음식물을 수거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남 완도의 한 어촌 마을은 가구별 음식물 쓰레기 양을 계량하여 1인당 일일 배출량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기준을 초과할 경우 공동 교육을 통해 개선 유도하고 있다.

퇴비화 장비 도입

음식물을 단순히 썩히는 것이 아니라, 위생적이고 효율적으로 분해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장비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는 다음 중 하나 혹은 복합 방식이 사용된다:

  • EM 발효 방식: 유용 미생물(EM)을 활용해 악취를 줄이고 분해 속도를 높이는 저비용 친환경 방식.
  • 고속 발효기: 전기를 이용해 단기간에 발효시키는 장비로, 마을 규모가 크거나 음식물 배출량이 많은 경우 사용.
  • 퇴비 더미 방식(Compost pile): 텃밭 옆이나 마을 뒤편에 직접 퇴비장을 조성해 자연 발효시키는 방식. 비용이 적고 교육 효과가 큼.

경기도 여주의 한 마을에서는 소형 고속 퇴비화기를 도입해 음식물 30kg까지 하루 만에 분해 가능하게 운영 중이며, 이 장비는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마을 주민회가 공동 운영하고 있다.

퇴비 활용 및 순환

퇴비화의 핵심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원을 다시 마을로 돌려주는 구조다. 다수의 제로웨이스트 마을은 퇴비를 다음과 같이 활용한다:

  • 마을 공동 텃밭에 비료로 사용
  • 유치원·학교 텃밭 학습 프로그램에 활용
  • 지역 농가와 협약해 유기농 재배용으로 공급
  • 퇴비를 건조 후 소포장해 마을 행사나 장터에서 판매

이러한 순환 구조는 단순한 음식물 감량 이상의 효과를 낸다. 주민들은 자신이 버린 음식물이 마을 생산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쓰레기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화하게 된다.

 

국내외 퇴비화 사례와 시사점

퇴비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구조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실천 모델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국내외 사례들을 살펴보자.

일본 고치현 유스하라 마을 – 유치원부터 시작한 퇴비 교육

이 마을은 제로웨이스트 마을로 지정된 이후, 가장 먼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퇴비화를 도입했다. 학생들은 도시락에서 남은 음식물을 직접 퇴비함에 넣고, 이를 통해 자란 채소를 다시 도시락 반찬으로 먹는 ‘자원 순환 체험’을 한다. 이를 통해 퇴비화는 단지 음식물 처리가 아닌, 교육과 식생활, 정체성 형성의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가정에서도 EM 발효제를 배포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도록 하고 있으며, 수거 차량은 주 2회만 운영해 과도한 배출을 억제하는 구조를 형성했다. 퇴비는 마을 장터에서 ‘유기 농가 인증 상품’의 생산 기반으로 판매되며, 경제 순환 모델도 함께 구축되었다.

전북 고창군 – 지역 농가와의 협력형 퇴비화 모델

고창군의 한 제로웨이스트 마을은 음식물 쓰레기를 자체 퇴비화한 후, 지역 농가 3곳과 협약을 맺고 퇴비 공급-농산물 수거-마을 장터 판매까지 연결된 순환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특히 퇴비 수거량에 따라 마일리지를 지급받는 구조를 설계하여, 참여 가구의 실천을 정량화하고 인센티브화하고 있다.

 

이 마을은 1년간 퇴비 생산량 약 5톤, 농산물 회수량 2톤을 기록했으며, 이를 마을 축제에서 직거래로 판매해 수익을 마을 기금으로 환원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쓰레기를 버린다는 개념이 사라졌다”는 반응을 보이며, 생활 습관의 실질적 변화를 경험했다.

 

퇴비는 쓰레기가 아니라, 마을을 살리는 순환 자원이다

퇴비화는 단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마을의 순환 시스템을 완성하고, 주민의 실천을 의미 있게 연결하는 매개 장치다. 퇴비화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마을은 단순한 감량보다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바로 의식의 전환, 공동체의 회복, 자원의 재인식이다.

 

앞으로 더 많은 제로웨이스트 마을이 퇴비화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실천이 쉬운 설계 –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간단하고 반복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 둘째, 순환 활용의 보장 – 퇴비가 실제 마을에서 활용되는 구조가 있어야 참여가 지속된다. 셋째, 교육과 문화화 –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정서적·문화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음식물은 생명에서 온 것이고, 다시 생명을 살리는 자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 마을의 퇴비화 시스템은 바로 그 순환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그 순환 속에서 마을은 ‘쓰레기 없는 삶’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진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