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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위한 소비자 행동경제학 적용 사례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치다. 자원을 아끼고,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 부담을 덜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 중 하나다. 많은 사람이 이 개념에 관심을 갖고, 때때로 리필용기를 들고 장을 보거나, 텀블러를 챙기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귀찮다”, “비싸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시 일회용품으로 돌아가거나, 몇 번의 실천 후에는 포기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단지 개인의 의지 부족 때문일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소비자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전통 경제학이 ‘인간은 합리적으로 선택한다’는 가정에 기반했다면, 행동경제학은 ‘사람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방식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지, 어떤 행동을 할지를 결정하는 데는 심리적 요인, 습관, 감정, 프레이밍 방식이 큰 영향을 미친다.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소비자 행동경제학

 

이 글에서는 행동경제학의 개념을 활용해, 사람들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도록 유도한 실제 적용 사례들을 소개한다. ‘올바른 것을 하자’는 도덕적 주장보다는, 사람의 행동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실천을 유도하는 전략에 집중한다.

 

행동경제학 개념으로 본 제로웨이스트 실천 유도 전략

행동경제학에서 자주 활용되는 개념들은, 사람들이 보다 친환경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여기서는 제로웨이스트 실천과 관련해 실제로 활용된 대표적인 행동경제학 원리를 소개한다.

넛지(nudge): 행동을 부드럽게 유도하기

넛지는 사람의 선택을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리필 마켓에서는 고체 샴푸와 액상 샴푸를 함께 진열할 때, 고체 샴푸 쪽에 ‘포장 없는 샴푸, 당신의 첫 실천은 여기서부터’라는 안내 문구를 넣고, 고체 제품 앞에 발자국 모양 스티커를 바닥에 부착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약 35%가 처음 구매 시 고체 샴푸를 선택했다.

 

또 다른 사례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텀블러를 사용하면 300원 할인’이 아닌, ‘일회용 컵을 사용하면 300원 추가 부담’이라는 방식으로 문구를 바꿨더니, 텀블러 사용률이 약 25% 증가했다. 이는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로, 같은 금액이라도 ‘손해’로 느끼게 하면 행동 변화가 더 잘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본값 설정(Default Option): 사람들이 바꾸지 않게 하는 힘

사람들은 생각보다 기본 설정을 바꾸는 것을 잘하지 않는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활용해 기본 옵션을 친환경적으로 설정하면, 대다수가 그 옵션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실제 사례로, 대전의 한 제로웨이스트 카페에서는 포장 시 ‘기본은 다회용 컵이며, 일회용 컵을 원하면 요청해야 함’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결과 70% 이상의 고객이 별도의 요청 없이 다회용 컵을 사용했다.

 

이처럼 기본값을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이는 제로웨이스트 매장이나 공공기관에서도 적용할 수 있으며, 예를 들어 세제 리필 구매 시 ‘용기 지참이 기본’이 되도록 구조를 만들면 소비자의 습관 형성에 도움이 된다.

사회적 규범(Social Norm): “남들도 한다니까 나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자신도 따라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사회적 규범’의 힘이라고 한다. 서울시의 다회용기 시범사업에서는 반납률을 높이기 위해, 회수함 옆에 ‘지난주 기준 이 지점 반납률 83%’라는 실시간 통계 안내판을 설치했다. 이후 실제 회수율은 이전보다 평균 12% 증가했다.

 

이와 유사하게,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에서도 ‘당신의 이웃 5명 중 4명이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광고에 넣었을 때, 참여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사람들은 도덕적인 말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손실회피(Loss Aversion): 얻는 것보다 잃는 걸 더 싫어한다

사람은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해를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다회용기 보증금을 ‘나중에 환급받는 구조’보다 ‘보증금이 깎이거나 소멸되는 구조’로 설정했을 때 회수율이 높아진다.


실제로 제주도의 한 다회용기 대여 서비스는 ‘1,000원 보증금을 3일 내 반납 시 100% 환급’에서 ‘3일 안에 반납하지 않으면 500원 차감’으로 정책을 바꾸자, 반납률이 기존 58%에서 83%로 상승했다. 손실에 대한 민감성이 실천을 자극한 것이다.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된 행동경제학 사례 분석

국내외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관련 프로젝트에서 행동경제학은 실질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래는 실제 정책, 기업, 커뮤니티에서 사용된 사례들이다.

서울시 공공 다회용기 사업의 ‘넛지형 회수함’

서울시가 시행한 다회용기 시범사업에서는 회수율 향상을 위해 회수함을 시각적으로 친숙하고 재미있게 디자인했다. 회수구 옆에 “쓰레기 안녕! 너는 다시 탄생할 거야!” 같은 문구와 함께, 회수 후 처리 과정을 만화 형식으로 붙여두었다. 이 같은 감성적 메시지는 ‘이 용기가 다시 사용된다’는 기대감을 높이고, 사용자들이 더 쉽게 행동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부산 제로웨이스트 마켓의 리필 보상 시스템

부산의 한 제로웨이스트 상점에서는 리필 구매 시마다 포인트를 제공하고, 누적 포인트가 쌓이면 일정 금액의 할인 또는 친환경 샘플을 증정한다. 이 상점은 고객의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리필 횟수 시각화 차트’를 제공하여 자기 실천을 확인할 수 있게 했고, 이러한 피드백 시스템은 재방문율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영국 런던의 리유저블컵 시스템과 기본값 정책

영국 런던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는 기본 옵션으로 ‘다회용 컵 제공’을 설정하고, 일회용 컵 사용 시 25펜스 추가 요금을 부과했다. 이 제도는 단순한 비용 차이보다도, 일회용을 선택하는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심리적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결과적으로 6개월 내 다회용 컵 사용률은 15%에서 65%로 급증했다.

SNS 챌린지를 통한 사회적 규범 유도

일부 제로웨이스트 브랜드는 “#용기내 캠페인”, “#제로웨이스트일기” 등 SNS 챌린지를 통해 사용자 행동을 유도한다. 이 방식은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자기 행동을 공개하고 타인과 비교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심리적 규범을 자연스럽게 형성한다. 특히 Z세대의 경우, 이런 참여형 콘텐츠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실천을 만들기 위해선 ‘가치’보다 ‘구조’가 먼저다

제로웨이스트는 옳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옳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실제로는 불편함, 습관, 손해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시선 등 수많은 심리적 요인들이 실천을 막고 있다. 그렇기에 단순한 캠페인이나 윤리적 메시지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실천을 유도하기 어렵다.

 

소비자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넛지, 기본값 설정, 손실회피, 사회적 규범, 시각화된 피드백 같은 전략은 사람들의 실천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습관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즉, 실천은 강요가 아니라 잘 설계된 환경이 만들어야 할 대상이다.

 

제로웨이스트는 결국 사람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 선택을 유도하고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속 가능한 변화의 진짜 시작점이다.